Ludic의 [공간]
일본 워킹홀리데이 이유서, 계획서 (2019년 4분기 합격) 본문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11가지(+병역, 언어 시험 인증) 서류가 필요하다. 11가지 서류 중 나머지야 개인정보 기록에 가까우니까 쉬운 편이다. 하지만 나 또한 오랜 시간 고민하게 만든 이유서와 계획서. 이 두 놈이 문제다.
떨어지고 나면 왠지 얘네들 때문에 그런가? 하고 제일 먼저 떠오르게 하는 녀석들. 빈칸을 채우면 되는 다른 양식들과는 달리 백지에서부터 만들어야 하는 이 둘은 혼자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막막함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나도 인터넷에 있는 수많은 합격과 불합격 사례들을 봤지만 오히려 머리가 아파질 뿐이었다. 물론 돈만 있으면 대행 같은 곳에 맡기면 된다. 역시 돈이 최고야.
하지만 대행업체가 우리의 사연을 하나하나 다 들어주면서 써주지는 않...을 것이다(아마). 그러니 이유서와 계획서를 쓸 땐 '내가' 써야 한다. 남이 써줬는데 탈락하면 핑계의 방향은 아무래도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대사관에 가서 서류를 접수할 때까지도 나는 일본에서 돈을 벌어오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응 아니야~ 방값이나 벌면 다행이야~"라지만 그때의 나는 패기에 가득 찼다. 하지만 워킹홀리데이라는 제도는 무엇인가. 1년 동안 여행 다닐 돈 벌어서 다 쓰고 가라는 제도다. 그렇기에 "여행은 무슨 돈이나 잔뜩 벌어서 한국으로 튀겠습니다"라고 솔직하게 적는 순간 코노야로 난나노 소리 들으며 탈락한다는 소리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뽑히냐. 일본어 실력은 차치하고 생각해보자. 당신이 일본 외교부(외무성) 직원이라면 다음 세 명 중 누구를 뽑고 싶을까.
A: 저는 일본으로 워홀을 꼭 가고 싶습니다! 네! 가고 싶다고요!
B: 저는 일본에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해야 하니 돈 좀 벌겠습니다!
C: 저는 일본 가서 FLEX 조지고 오겠습니다!
그래. 원래 워킹홀리데이의 목적대로라면 "폭탄테러를 하기 위해 풍속점에서 돈을 벌겠다"라고 한 게 아닌 이상 B를 뽑는 게 맞다. 근데 생각해보자. 이 시국에 그런 말이 통한다고?
솔직히 윗분들이 보기엔 C가 가장 이뻐 보일 거다. 아무리 일본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없다 그래도 결국 일본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우기를 것이다. 그게 바람일 뿐 현실이 안되니까 외국인들을 받아주는 거고. 그러니 딱 세 명 중에 한 명을 뽑아야 한다면 돈 존나 들고 와서 3개월 말고 1년 동안 탕진하고 가겠다는 C를 뽑을 것이다. 근데 그런 금수저가 워홀을 왜 하니? 걍 꼴리면 버스 타듯이 비행기 타고 놀러 다니면 되는데.
그럼 어째야 하냐고? 간단하다. 구라쳐라. 나는 C처럼 하겠다고. 여기 내 누추한 이유서를 보자.

지금 와서 보니 문법이랑 단어 꼬라지 봐라 어케 합격했누 X발련ㄴ아.
나는 지리학과다. 또한 디지털콘텐츠학과다. 마치 청국장요거트 같은 내 전공들을 나는 "지리학과의 발로 돌아다녀 디지털콘텐츠학과의 손으로 전 세계에 일본의 숨겨진 명소들을 알리겠다"라고 써먹었다. 물론 구라다. 하지만 진짜 나에게 돈이 많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일본인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하겠다고 구라치는 것이다. 지원하는 건 한국인이지만 뽑는 건 일본인이잖아.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일본인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라면 OK겠지만 아니라면? 구라쳐야지. 합격해야 하니까. 어차피 이유서와 계획서대로 살고 있는지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
일단 워홀을 가는데 자신한테 돈이 존나 많다고 생각하자. 그럼 여러분은 무엇을 할 것인가. 야구를 보러 다닐 수도 있고, 라이브나 콘서트를 갈 수도 있고, 아무튼 행복한 상상을 해보시라. 그리고 그것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세줄 요약 하면
- 돈이 존나 많이 있다면 일본에 가서 하고 싶은 것을
-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할 것이라고
- 구라쳐라.

이유서의 내용이 정해졌다면 계획서의 방향을 잡기는 쉽다. 이유서에서 구라친 내용을 바탕으로 사진 몇 장 넣어서 뭐 뭐 할 거라고 구체적인 예상들을 보여주는 게 계획서다. 야구를 보러 가겠다면 경기하는 사진을 쓰던지, 라이브를 가겠다면 라이브 사진을 넣는 식으로 말이다. 정확히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겠다 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뭘 할 건데 언제 어디서 할까'의 방향으로 들어가자. 나의 경우 일본의 숨겨진 명소를 알린다고 해놓고서는 도쿄 올림픽에 사가 벌룬페스타, 돗토리 사구까지 유명한 것들만 썼다. 근데 어케 붙음?
인터넷 보면 일본 백지도를 넣으니 표를 만드니 계획서에 별의별 방법을 다 쓰는데 "저는 그런 거 못하는데 어떡하죠?"라고 할 수도 있다. 어렵게 가지 말고 못 하면 그냥 쓰지 맙시다. 내 계획서만 봐도 일러로 만들기는 했지만, 디자인적 요소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일러에서 내보낼때 평소처럼 심도를 72로 했더니 해상도가 낮아져서 글씨가 깨져 보이기까지 했다. 근데도 붙었네?
심지어 일본어나 영어로 써도 된다고 하니까 냉큼 영어로 썼다. 계획서를 일본어가 아니라 영어로 쓴 이유는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라 일본어로 번역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어도 번역기를 안 돌린 건 아니긴 하다만ㅋㅋ. 다만 영어로 썼으면 양심적으로 토익 성적표 하나는 제출하자.
이유서와 계획서의 핵심은 '진심'이다. '진실'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거짓이어도 뽑을 사람들이 혹할 만한 이야기라면 밍밍한 진실보다 더 많은 점수를 얻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걱정은 마시라. 나도 붙었다. 주한일본대사관 홈페이지에 적힌 발급요건 지키고, 제출서류를 빼먹는 게 아니라면야 무서워하지 말자.
야, 너두 합격할 수 있어.
'일본 워킹홀리데이 > 워홀 준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D-1→0 부동산은 통수와 기적. 마지막 짐싸기와 마음의 준비 (0) | 2020.02.04 |
---|---|
D-6 일본 워홀 집구하기...였다 (0) | 2020.01.29 |
D-14 일본 워홀러들을 위한 체크카드 만들기(feat.하나카드) (0) | 2020.01.21 |
어쩌다 시작한 일본 워킹홀리데이 준비, 그렇게 시작된 내 이야기 (0) | 2020.01.15 |